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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 - 저녁무렵의 구두 한 켤레시(詩)/시(詩) 2015. 5. 25. 13:20
쓰레기장에 버려진 구두 한 켤레
어둠 속에 놓여 있는 모습이
어디서 본 듯하다
무겁고 버거운 생의 무게 견딘
실밥 터진 옆구리
말할 기운이 없는 절반쯤 잘린 혓바닥
균형 맞지 않았던 생이 엿보이는
더 닳은 한쪽 굽
젊은시절 알 수 없는 분노와
돌부리처럼 걸리적거리는 것들
깡통차듯 차 버리곤 했지만
늘 발등 찍혀 마음 아파했다
때로는 험준한 구보를 위해
뜨거운 결의로 구두끈을 꼭 조여 묶고
장맛비 속에 젖고,
쓰러뜨릴것 같은 눈 속을 헤짚으며 길을 갔지만,
오늘은 틀니 빠진 노인처럼 입 벌리고 있다
새 구두보다 생각이 많은 낡은 구두 한 켤레
누추한 모습으로 입 꼭 다물고 있다
순명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고 있다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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