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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 옛날의 금잔디시(詩)/이기철 2015. 5. 18. 00:44
4월이 오면 살구꽃이 피는 마을로 가야지
죽은 강아지풀들이 다시 살아 일어나고
초가(草家) 추녀 끝에 물소리가 방울 울리는 마을로 가야지
풀밭에는 어릴적 잃어 버린 구슬이 고운 숨 할딱이며 누워 있겠지
이랑에는 철 만난 완두콩이 부지런히 제 몸에 푸른 물을 들이고
잠 자던 뿌리들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물 아래 내려가
물들의 가장 깊은 속살을 빨아 먹겠지
눈썹에 앵도꽃을 단 처녀애들은
작년에 넣어 둔 분홍신을 꺼내 신고 들판을 달리고
마을 사람들은 햇빛보다 먼저 일어나
간격이 고른 녹색대문(綠色大門)을 달겠지
동구길엔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복숭아꽃이 피고
구르는 돌멩이도 부서져 제비풀의 거름이 되겠지
4월이 오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옛날의 금잔디
거기 가서 휘파람 몇 가닥 남겨 두고 와야지
거기 가서 댕기에 눈물 닦던 누님의 기침 소릴 듣고 와야지.
(그림 : 문혜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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