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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 저녁이 다녀갔다시(詩)/이기철 2015. 5. 31. 00:17
내 다 안다, 사람들이 돌아오는 동네마다 저녁이 다녀갔음을,
나이 백살 되는 논길에 천살의 저녁이 다녀갔음을, 오소리 너구
리 털을 만지며 발자국 소리도 없는 저녁이 다녀갔음을
찔레꽃 필 때 다녀가고 도라지꽃 필 때 다녀간 저녁이 싸리꽃
필 때도 다녀가고 오동꽃 필 때도 다녀갔음을, 옛날에는 첫 치
마 팔락이던 소녀 저녁이 이제는 할마시가 되어 다녀갔음을
내 다 안다, 뻐꾸기 자주 울어 맘 없는 저도 울며 상춧잎에 보
리밥 싸 먹고 맨드라미 밟고 온 저녁이 대빗자루로 쓴 마당에 손
님처럼 과객(過客)처럼 다녀갔음을, 풀꽃의 신발마다 이슬 한잔 부어놓
고 다녀갔음을, 내일 다시 태어날 사람을 위해 들판 가득 달빛을
뿌려놓고 다녀갔음을
(그림 : 이신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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