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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후다닥 무언가 뛰쳐나간다.
가슴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꽃이다.
까만 봉지 속이 환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무 한 개 꽃자루를 달고 있다.
베란다 구석에서 뒹굴던 새득새득한 무.
구부정 처진 꽃대에 보랏빛 꽃잎이 달렸다.
독하다 참말 독하다.
물 한 모금 없이 꽃을 피우다니.
손에 얹힌 무, 몸집보다 가볍다
척, 제 무게를 놔버리지 못하고 주저주저 망설인다.
봄이 말라붙은 무꼬랑지 쥐고 흔들어댄 모양이다.
창을 넘어와 봉다리를 풀고 무를 부추긴 모양이다
눈을 뜨다 만 연보라빛 무꽃.
여기가 어디라고 덜컥, 꽃이 되었던가.
어미 살을 파먹고 꽃이 된 무꽃.
쪼그라진 젖을 물고 있는 무꽃.
(그림 : 노숙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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