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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 남해섬에서 여러 날 밤시(詩)/허수경 2015. 4. 26. 13:44
육지의 불빛이 꺼져가는 아궁이 쑥냄새 같은 저녁이었고모래 구멍엔 낙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수만의 다리로 머리를 감추고 또한 머리와 다리가 무슨 양성(兩性)처럼 엉기면서
먼 저녁의 구멍을 지탱하고 있었는데요
그 구멍마다 저 또한 어둠이겠지만 엉겨붙어 살아 남는 것들이여
멀리 무덤 같은 인가에도 엉겨붙는 저녁과 밤과 새벽이 있을 거구요
이리 어둑하게 서 있는 나는 저 미역 저 파래 저 엉겨붙는 그리움으로
육지를 내치고 싶었습니다
진저리치는 저 파도 저 바위 저 굴딱지처럼 엉겨붙어 엉겨붙어
(그림 : 김상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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