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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 서울에서의 하루시(詩)/천양희 2015. 2. 21. 13:58
서울은 거대한 수족관입니다.
나는 그속에서 물을 먹고 삽니다.
날마다 지느러미를 흔들고 꼬리 치며 우왕좌왕합니다.
살기 위해 온갖 헤엄을 다 칩니다.
배영을 하다 평영을 하다 접영을 합니다.
물결 따라 휩쓸리기도 하고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어느땐 물 위를 솟구치기도 하고 물보라를 내뿜기도 합니다.
맑은 물에 가면 어리둥절하고 흐린 물에 가면 어안이 벙벙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물이라고 하지만
어느 물에 놀아야할지 물놀이도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물결은 끼리끼리 놀고 물살은 따로따로 놉니다.
요즈음엔 물의 동인도 없고 물빛도 없습니다.
물먹고 사는 것이 물같이 사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물보다 맑은 눈물이 있다는 걸 물먹어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면 물속도 물맛도 깨끗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초 사이로 물색이 흐려지고 물 밑바닥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습니다.
서울은 무엇이로든 가득 차 있습니다.
한심한 인심에 수심도 때로 얼어 붙습니다.
누군가 이 얼어 붙은 세상, 하면서 냉정해집니다.
나는 하루를 다 쓰고 저뭅니다.
(그림 : 양종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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