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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 비 그친 뒤시(詩)/이정록 2014. 10. 30. 02:01
소나기가 안마당을 두드리고 지나가자놀란 지렁이 몇 마리가 대문 쪽으로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탉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을 다듬듯 바닥에 부리를 문지른다
천둥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를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치자
울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리들이 빗방울을 내려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를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내기 중인 무논의 물살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 몸에 초록 침을 맞는 무논의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맞는 자리로 구름 몇이 다가온다
개구리의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웠겠다
암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 쪽을 내다본다
(그림 : 김주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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