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관 - 가을 떡갈나무 숲시(詩)/이준관 2014. 9. 24. 22:45
떡갈나무 숲을 걷는다. 떡갈나무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혼례(婚禮),
그 눈부신 날개짓소리 들릴 듯 한데,
텃새만 남아
산(山) 아래 콩밭에 뿌려 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 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 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같다.
떡갈나무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산(山)짐승이 혀로 핥아 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산(山)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질거야, 잎을 떨군다.(그림 : 이충길 화백)
'시(詩) > 이준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관 - 여름 별자리 (0) 2015.04.12 이준관 - 비 (0) 2015.02.15 이준관 - 고구마를 캐는 사람과 만나다 (0) 2014.09.24 이준관 - 얼었던 바퀴 자국 밀고 일어서는 (0) 2014.09.24 이준관 - 풀잎 (0) 201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