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는
내 머리에 떨어지는 비가 좋았다
비를 맞으면
해바라기 꽃처럼 쭉쭉 자랄 것 같았다
사랑을 할 때는
우산에 떨어지는 비가 좋았다
둘이 우산을 받고 가면
우산 위에서 귓속말로 소곤소곤거리는
빗소리의 길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처음으로 집을 가졌을 때는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비가 좋았다
이제 더 젖지 않아도 될 나의 생
전망 좋은 방처럼
지붕 아래 방이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지금
딸과 함께 꽃씨를 심은
꽃밭에 내리는 비가 좋다
잠이 든 딸이
꽃씨처럼 자꾸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는 일이 행복하다
(그림 : 윤형호 화백)
'시(詩) > 이준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관 - 부엌 문을 열고 어머니가 내다보던 마당을 (0) 2015.04.12 이준관 - 여름 별자리 (0) 2015.04.12 이준관 - 가을 떡갈나무 숲 (0) 2014.09.24 이준관 - 고구마를 캐는 사람과 만나다 (0) 2014.09.24 이준관 - 얼었던 바퀴 자국 밀고 일어서는 (0) 2014.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