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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 대숲이 날 거두어들였을 적에는
대숲에 들러붙은 별들이 댓잎을 갉아대고 있었습니다
흠뻑 물기 머금은 바람이 그것들을 쓸어서는
한 섬이나 산 능선에 모아놓자
너울너울한 대숲은 빼곡히 수직으로 기립해서
제 무슨 비늘 달린 즘생이나 되는 듯이
숨을 몰아쉬며 웅크렸는데요
댓잎들이 몸을 뒤채 비늘 단 즘생의 몸을 이루고
후두둑 한번 몸을 떤 뒤
펄쩍 몸을 솟구쳐 중천으로 뛰어오르면
산이며 들이며 먼 인가의 불빛들이며는
다 그 앞에 부복할 터인데요
중천을 치받으며 즘생을 이룬 몸뚱이서
별들은 툭툭 떨어져내리다 팽그르르 돌다가
희미하게 가물가물 삭아 없어지기도 했는데요
중천의 달 모가지를 거머쥐며
슬슬 큰 즘생을 거느리고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었는데요
(그림 : 김민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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