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내미 갸가 큰딸 여우살이 시킬 때 엇송아지 쇠전에 넘기구
정자옥서 술국에 탁배기까정 한잔 걸치고 나올 때는 벌써 하늘이 잔뜩 으덩그려졌더랴
바람도 없는디 싸래기 눈이 풀풀 날리기 시작혔는디
구장터 지나면서부터는 날비지 커튼 함박눈이 눈도 못 뜨게 퍼붓드라는구만
금매 쇠물재 밑이까지 와서는 눈이 무픞꺼정 차고 술도 얼근히 오르고 날도 어두어져오는디
희한하게 몸이 뭉근히 달아오르는디 기분이 참 묘하드라네
술도 얼근허겄다 노래 한자락 사래질 꺼정 해가며 갔다네
눈발은 점점 거치고 못뚝 얼음 갈라지는 소리만 떠르르하니 똑 귀신 우는 거거치 들리드라는구만
그래 갔다네 시상이 왼통 허연디 가도 가도 거기여 아무리 용을 쓰고 가두 똑 그 자리란 밝고 뺑뺑이를 도는겨
이러단 죽겄다 싶어 기를 쓰며 가는디두 똑 그 자리란 말여 설상가상으로 또 눈이 오는디
자꾸만 졸리드랴 한걸음 띠다 꾸벅 이러면 안된다 안된다 하믄서두 졸았는디
근디 말여 저수지 한가운디서 누가 자꾸 불러 보니께 웬 여자가 음석을 진수성찬으로 차려놓고 자꾸 불런단 말여
너비아니 육포에 갖은 실과며 듣도 보지 못한 술냄새꺼정 그래 한걸음씩 들어 갔다네
눈은 퍼붓는다 거기만 눈이 안 오구 훤하드랴
시상에 그런 여자가 옶겄다 싶이 이쁘게 생긴 여자가 사래질하며 불런께 허발대신 갔다네
똑 꿈속거치 둥둥 뜬 거 거치 싸목싸목 가는디 그 여자 있는 디 다 왔다 싶은디
뒤에서 벼락커튼 소리가 들리거든 종내마 이놈아 거가 워디라고가냐
돌아본께 죽은 할아버지가 호랭이 커튼 눈을 부릅뜨고 지팽이를 휘두르며 부르는겨
무춤하고 있응께 지팽이루다가 등짝을 후려치며 냉큼 못나겄냐 뒤징 줄 모르구 워딜 가는 겨
얼마나 잤으까 등짝을 뭐가 후려쳐 일어서 본께 당산나무에 쌓인 눈을 못 이겨 가지가 부르지며 등짝을 친겨
등에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시상이 훤한디
눈은 그치고 달이 떴는디 집이 가는 길이 화안하게 열렸거든
울컥 무서운 생각이 들어 똑 주먹 강생이 거치 집으로 내달렸다는디
종내미 갸가 요새두 당산나무 저티 가믄서는 절해가며 아이구 할아버지 헌다누만
여우살이 : 결혼생활을 말하는 옛 우리말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결혼 생활이란 남자측을 말하는게 아니고 여자측의 결혼 생활을 말한다
무춤(부사) : 놀라거나 어색한 느낌이 들어 하던 짓을 갑자기 멈추는 모양
'시(詩) > 송진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진권- 비지장 먹는 저녁 (0) 2014.09.08 송진권 - 대숲 (0) 2014.09.08 송진권 - 무수 (0) 2014.09.08 송진권 - 각인 (0) 2014.09.08 송진권 - 맹꽁이 울음소리 (0) 201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