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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세월이 흘렀는디두 어제 일 겉다야
눈이 어둔 우리 고모 시래기 거튼 푸석한 손으로
막걸리 자신 입을 훔치며 무짠지 집어들고
찬찬히 그때를 짚어보시는디
하늘이 무수 대강이에 오른 파랑물 같은 봄날
해토한 움을 열고 우리 고모부 고종남씨 무수를 꺼냈겄다
삼동을 날 동안 무수 하나로 조석을 해댄
억척배기 우리 고모 박딸금씨도 그 저티서
광우리 무수를 담고 있었는디
얼렐레
내남적없이 하 배고픈 봄날에 박딸금씨
기중 못난 무수 하날 골라
쓱쓱 광목치마 말기에 닦아
한입 베물려는디
담배참으로 아지랑이나 쳐다보며 해찰하던
고모부 고종남씨가 여편네 고쟁이 새로 뵈는 무수 거튼
허연 다리통을 보고 만 거라
마음이 동한 고종남씨 싫다는 고모를 끌고
물 마른 봇도랑 새로 들어가
일을 벌이셨다는디
어따야
쉰밥 취급하던 여편넬 그리 장하게 밀고 들어온 적이 없었다는디
갓 날아온 제비년들이
전깃줄에 나리비로 앉아서들
난 다 봤는디
다 봤는디 머
하 입싸게 놀려대고
입 무거운 굴왕신마저도 움 속에서
우멍한 눈을 거멓게 뜨고는 신들신들 웃었다는디
낯 붉어진 박딸금씨
주섬주섬 광우리 무수를 이고
지아비 앞세우고 동네 입새 들어섰는디
삼동네 꽃다지 번지드끼
매초롬한 제비년들 입방아를 찧고 다녀
몇날을 얼굴을 못 들고 댕겼다는디
그 고모부 동란 때 잃고
삼남매 혼자 키워낸
아직 정정한 우리 고모 박딸금씨
아흔에서 둘이 빠지는 미수(米壽)
무수만 보믄 얼굴이 붉어진다고
갓 시물 난 시악시 겉다고
막걸리 대접 부시며
아직도 보얀 다리통 드러내며
희벌쭉 웃으시는 우리 고모 박딸금씨
시상 최고로 맛난 건
겨울 지난 무수 낫으로 썩썩 삐져 먹는 거라고
체머리 흔들며 말씀하시지요
아덜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
며느리한테 퉁박을 맞으면
애고 무시라
애고 무시라 하시믄서두요(그림 : 오소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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