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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흠 - 베릿내에서는 별들이 뿌리를 씻는다
    시(詩)/이대흠 2014. 9. 6. 00:45

     

    이 여윈 숲 그늘에

    난꽃 피어날 때의 꽃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서 당신의 무릎을 바라보며

    세월이 어떻게 동그란 무늬로

    익어 가는지 천천히 지켜보다가

    달빛 내리는 언덕을 쳐다보며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고통과

    꽃의 숨결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가만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먼 데 있는 강물은

    제 소리를 지우며 흘러가고

    또 베릿내 골짜기에는

    지친 별들이 내려와

    제 뿌리를 씻을 것이다

    그런 날엔

    삶의 난간을 겨우 넘어온 당신에게

    가장 높은 난간이

    별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그래서 살아있는 새들은

    하늘 한 칸 얻어 집을 짓는 것이라고

    눈으로 말해주고 싶다

     

    서러운 날들은

    입김에 지워지는 성에꽃처럼 잠시 머물 뿐

    창을 지우지는 못하는 법

    우리의 삶은 쉬 더러워지는 창이지만

    먼지가 끼더라도

    눈비를 맞더라도

    창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으니

    뜨거운 눈물로 서러움을 씻고

    맨발로 맨몸으로 꽃 세상을 만드는 저 동백처럼

    더 푸르게 울어버리자고

    그리하면 어둠에 뿌리 내린 별들이 더 빛나듯

    울 일 많았던 우리의 눈동자가

    더 반짝일 것이라고

    베릿내 :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지명

    베릿내는 별이 내리는 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확실치 않다.

    강가나 바닷가의 벼랑을 '벼루'라고 하는데 이것이 변음되어 '베루/베리'로 되고 '베릿내'로 된 것으로 보인다.

    색달천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천제 연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색달천(塞達川)', 제주삼읍전도 에는 '성천(星川)'으로 표기했다.

    (그림 : 오유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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