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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옮겨 온 곳은
어느 농사꾼이 살다
한해 전 삶을 마감한
함안군 여항면 별천골짝 아래
촌집인데
뒷간 옆에는 지게가 세 개 있다
하나는 아직 멜빵도 매달아 보지 못한 채
매끈하게 다듬어져 농부를 기다리고
나머지 두 개는 거름도 져 나르고
볏짚도 옮기고 때론 산에 올라
땔감도 함께 짊어졌다는 걸 말하듯
낡은 새끼줄은 땀내에 절어있다
마당 한 구석엔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다
묵직한 뚜껑을 잡아 올리니
할배가 옻닭을 고아 먹은 일이며
잔칫날 동네 사람들과 지짐을 부치던
고소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이젠 녹물 배인 가마솥에게
내 삶도 함께 고아 달라고
내 뿌리도 함께 지져 달라고
아궁이에 가슴을 지펴
풀풀 연기 날리는
첫날밤은 저문다(그림 : 김주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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