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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옥 - 깡보리밥과 열무김치시(詩)/시(詩) 2014. 8. 3. 18:22
한겨울에도 콧날 파랗게 밭 마지기 기가 살아서
미끈거리던 날이 있었다
논두렁에 삼베 바지 걷어붙이고 납작 보리쌀 같은 등을
삶고 삶아도 삶이 미끄러워
걸쭉한 아리랑 박자가 한 뼘씩 낮아지면
땡볕으로 맛을 끓인 된장국 냄새 킁킁 콧날 세운다
풋고추 몸뚱아리가 홍수에 떠내려가는 돼지 엉덩이처럼 동동 뜨고
앵벌 같은 시어머니 담뱃대 두들기는 소리
모락모락 고봉으로 쌓아올리면
지난가을 초가지붕에 떨어지는 별로 구운 청량 고추장이
희멀건 보리밥 위에 미끄럽게 쏟아진다
보리밥은 무식하고 미끄러워 된장 한 숟갈만 덧칠 하면
검고 흰 것 가릴 것 없이 붉게 변하고
열무 한 단이면 밤새 숨죽인 김치국물에
품앗이 노총각 목구멍이 펑 터지고 말 것인데
앞산 뻐꾸기 후렴 소리 논에 박히고 바람결 목에 감겨도
숟가락 미끄러지는 소리 달그락거린다
(그림 : 강주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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