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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혜영 - 콩과 어머니
    시(詩)/시(詩) 2014. 7. 17. 23:38

     

     

     

    날마다 간이 콩알만해진다던,

    우리 엄니 사는 일은 콩이나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흙내를 맡고 마침내 잭의 콩나무처럼 천상에 오르셨지요

    의심 많은 딸년 그 줄 타고 오르려다 넌출은 튼튼한가?

    건들건들 흔들다가 발로 탁탁 차보는데

    콩! 후드드득 검정 간들이 마구마구 쏟아졌습니다


    저거 백일해 걸려 그때 죽는 줄 알았는디,

    바리작 바리작 살아나드니 내 속을 저렇게 썩인다니께
    엄니의 간이 콩알만해질 때마다, 새까맣게 타서 검정콩이 될 때마다

    갤록갤록! 나 시위를 하듯 백일기침을 해댔지요

    오라버니 잘 나가던 사업 부도가 났을 때도 사위들 바람났다는 허허한 소식에도,

    이밖에도 우리 엄니 간은 매일매일 실하게도 여물어 갔습니다
    이제는 튼실한 넌출 하나 확실하게 올리신 우리 엄니 콩 수확도 풍년이겠습니다

     

    천상에 지천으로 만발을 했을 콩꽃,

    온통 진자줏빛으로 흔들리는 하늘을 부신 듯 바라보다가 울컥하는데,

    목젖까지 밀고 나오던 간이 울음을 막아 꺽꺽 터지질 않습니다

    이런 딸년에게도 우리 엄니 콩 넌출 끝에 두레박 하나 달아서 내려 보내실래나?

    부은 간일랑은 뚝 떼어놓고 간들간들 내 새끼만 타고 오라고.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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