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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언 -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시(詩)/시(詩) 2014. 7. 14. 10:05
여린 풀들 몇 가닥
비쩍 마른 종아리를 치켜들고
무너진 장독대를 기웃거린다
소문 없이 굵어진 감나무 가지 끝에서
행여 소식이라도 떨어져 내리지
않을까, 않겠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다만
아무 가져갈 것 없이 가볍게 떠난 자리
옹기종기 그림자들 묻힌 자리에선
여윈 버섯들 자잘한 그리움으로 피고 지고
밑 빠진 대항을 넘성거리는
여린 풀들 몇 가닥 같은 발자국들아
도회지 팍팍한 삶처럼 뒤꿈치 굳은 살 갈라진
늙은 감나무 밑둥 같은 얼굴들아
두런두런 쌓이는 이슬이 가녀린 바람마저 잠재우면
길은 산발한 잡풀 속에 잠들어
행여 거친 꿈에 시달리는지 자꾸만
깊은 도랑 속에 뒤척뒤척 몸을 빠뜨리고
소문 없이 잔가지 무성해진 감나무는
그 새벽 풀숲으로 여전히
풋감들 수북수북 떨군다, 이제
아무도 그 세월을 주워 가지 않건만대항(명사) : 큰 항아리(옛말)
(그림 : 전성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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