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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능금밭 앞을 서성이다시(詩)/고재종 2014. 7. 12. 00:28
내가 시방 어쩌려고 능금밭 앞에서 서성이며
내가 요렇듯이 바잡는 마음인 것은
저 가시 탱자울의 삼엄한 경비 탓이 아니다
내가 차마 두려운 건, 저 금단의 탱자울 너머
벌써 신신해진 앞강물소리와
벌써 쟁명해진 햇살을 먹고
이 봐라, 이 봐라, 입 딱! 벌게는 주렁거리며
빨갛게 볼을 붉히고 있을 능금알들의 황혼
어느해 가을 저곳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볼이 달아오를대로 올라선
그 능금알을 따는 처녀들과
그것을 한광주리씩 들어올리는
먹구리빛 팔뚝의 사내들을 훔쳐본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저 능금밭에 들려거든
두근두근 숨을 죽이고, 콩당콩당 숨을 되살리며
개구멍을 뚫는 벌때추니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익을대로 익은 빛깔이
그토록 견딜 수 없는 향기로 퍼지는
저 풍성한 축제를 누가 방자하게 바라볼 것인가
내가 능금밭 앞에서 여전히 두려운 것은
시방 무슨 장한 기운이 서리서리 둘러치는!
저 금기의 신성의 공간, 그것을
내 차마 좀팽이로도 바잡는 마음 다하여
아직도 몰래 훔치고 싶은 이 황홀한 죄, 죄 때문(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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