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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한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시(詩)/고재종 2014. 7. 11. 00:33
우리 동네 성만 씨네 산다랑치논에, 그 귀퉁이의 둠벙에, 그 옆 두
엄 자리의 쇠지랑물 흘러든 둠벙에, 세상에, 원 세상에, 통통통 살 벤
누런 미꾸라지들이, 어른 손가락만한 미꾸라지들이 득시글벅시글거
리더라니, 그걸 본 가슴팍 벌떡거린 몇몇이, 요것이 뭣이당가, 요것이
뭣이당가, 농약물 안 흘러든 자리라서 그런가벼, 너도 나도 술렁대며
첨벙첨덩 뛰어들어, 반나절 요량을 건지니, 양동이 양동이로 두 양동
이였겄다!
그 소식을 듣곤, 동네 아낙들이 성만 씨네로 달려오는데, 누군 풋배
추 고사리를 삶아오고, 누군 시래기 토란대를 가져오고, 누군 들깨즙
을 내오고 태양초물을 갈아오고, 육쪽마늘을 찧어오고 다홍고추를 썰
어오고, 산초가루에 참기름에 사골에, 넣을 것은 다 넣게 가져와선,
세상에, 원 세상에, 한 가마솥 가득 붓곤 칙칙폭폭 칙칙폭폭, 미꾸라
지 뼈 형체도 없이 호와지게 끓여내니
그 벌건, 그 걸쭉한, 그 땀벅벅 나는, 그 입에 쩍쩍 붙는 추어탕으로
尙齒상치마당이 열렸는데, 세상에, 원 세상에, 그 허리가 평생 엎드렸던
논두렁으로 흰 샛터집 영감도, 그 무릎이 자갈밭에 삽날 부딪는 소리
를 내는 대추나무집 할매도, 그 눈빛이 한번 빠지면 도리 없던 수렁
논빛을 띤 영대 씨와, 그 기침이 마르고 마른 논에 먼지같이 밭은 보
성댁도 내남없이, 한 그릇 두 양푼씩을 거침없이 비워내니
봉두난발에, 젓국 냄새에, 너시에, 반편이로 삭은 사람들이, 세상
에, 원 세상에, 그 어깨가 눈 비 오고 바람치는 날을 닮아버린 그 어깨
가 풀리고, 그 핏줄이 평생 울분과 폭폭증으로 막혀버린 그 핏줄이 풀
리고, 그 온몸이 이젠 쓰러지고 떠나버린 폐가로 흔들리는 그 온몸이
풀리는지, 모두들 얼굴이 발그작작, 거기에 소주도 몇 잔 걸치니 더더
욱 발그작작 해서는, 마당 가의 아직 못 따낸 홍시알들로 밝았는데,
때마침 안방 전축에선,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다고 하매, 한번 놀아보장께. 기필코 놀아
보장께, 누군가 추어대곤, 박수치고 보릿대춤 추고 노래 부르고 또 소
주 마시니, 세상에, 원 세상에, 늦가을 노루 꼬리만한 해 넘어가는 줄
도 모르고 한바탕 잘 노니, 아 글쎄, 청천하늘의 수만 별들도 퉁방울
만한 눈물 뗄 글썽이며, 아 글쎄, 구경 한번 잘 하더라니!
산다랑치논 : 다랑논,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되어 있는 좁고 긴 논
둠벙 : '웅덩이'의 방언
쇠지랑물 : 외양간 뒤에 소의 우줌이 괴어 검붉게 썩은 물
상치마당 : 노인을 공경하기 위하여 마련한 자리
폭폭증 : 폭폭징. '갑갑증'의 방언
보릿대춤 : 발동작 없이 양팔을 굽히고 손목을 접혔다 뒤집었다 하며 좌우로 흔들어 추는 춤(그림 : 림용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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