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앴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그림 : 김동구 화백)
'시(詩) > 송찬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찬호 - 뜨개질, 그 후 (0) 2015.10.02 송찬호 - 칸나 (0) 2015.03.25 송찬호 - 동백이 지고 있네 (0) 2014.02.14 송찬호 - 가을 (0) 2014.01.13 송찬호 - 봄밤 (0) 201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