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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통 반 잘라 엎어놓고 칸나는 여기서 노래를 하였소
초록 기타 하나 들고 동전통 앞에 놓고
가다 멈춰 듣는 이 없어도 항상
발갛게 목이 부은 칸나
그의 로드 매니저 낡은 여행용 가방은
처마 아래에서 저렇게 비에 젖어 울고 있는데
그리고 칸나는 해질녘이면 이곳 창가에 앉아
가끔씩 몽롱 한 잔씩을 마셨소
몸이 이미 저리 붉어
저녁노을로 타닥타닥 타고 있는데
박차가 달린 무거운 쇠구두를 신고 칸나는
세월의 말잔등을 때렸소
삼나무숲이 휙휙 지나가 버렸소
초록 기타가 히히힝, 하고 울었소
청춘도 진작에 담을 넘어 달아나 버렸소
삼류 인생들은 저렇게 처마 밑에 쭈구리고 앉아 초로(初老)를 맞는 법이오
여기 잠시 칸나가 있었소
이 드럼통 화분에 잠시 칸나가 있다 떠났소
하룻밤 노루의 피가 자고 간, 칸나의 붉은 아침이 있었소(그림 : 윤선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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