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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길은 뒤에 가기로 하고 앞길을 먼저 따라갔습니다
샛길을 끼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길은 몇갈래 가다가 멈춘 길도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지평선 하날 당겨 먼 세계를 적었습니다
나아가려면 우선 물러서라는 말이
진(進)과 퇴(退)의 처세법임을 그때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곧은 것은 쉽게 부러지나 굽은 것은 휘어진다고 말들 하지만
구부러지면 온전하다는 저 곡선의 유연함 저 내밀함······
놀라운 것은 감추면서 드러내는 그것이었습니다
길 없어도 세상은 새길을 만들고
사람들은 바쁘게 나를 앞질러 갔습니다
옛길이 언제 새길을 내려놓았겠습니까
가파른 길 내 길처럼 걸어갈 때 나도 그랬을 것입니다
멀리 가야 많이 본다는······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모든 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길의 모든 것은 걷고 싶지 않아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들판 너머 길 하나 산 너머 길 바라다봅니다
길의 끝은 멀고 그리고 가파릅니다
고갯길은 힘든 그 어떤 것도 넘겨주질 않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길을 넘었습니다
고갯길을 벗어나도 벗지 못하는 업도 있습니다
눈부신 햇살도 모든 어둠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 다시 쓰고 싶은 생이 있겠습니까
앞길밖에 길이 없겠습니까 가다 보면 길이 되는 것
그것이 오래 기다린 뒷길일 것입니다(그림 : 장정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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