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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양희 - 우표 한 장 붙여서
    시(詩)/천양희 2014. 2. 10. 17:12


    꽃 필 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한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않는 네 슬픔같아 떨어진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 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 볼 때까지
    험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마음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 뜨게 한 한사람의
    눈 먼 자를 생각한다 누가 다른사람
    나만큼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 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나
    말해봐라
    우표 한장 붙여서 부친 적이 있나

    (그림 : 김선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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