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선태 - 겨울 항구
    시(詩)/김선태 2014. 5. 14. 16:36




     1.
    오늘도 기다림으로 발끝이 시린 삶을 적시며 눈이 내린다
    밤이면 바다는 선착장 목덜미를 캄캄히 넘보며
    가난에 덮혀 잠든 사람들의 꿈 속까지 젖어들고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 속을 항구의 낡은 창들이
    잠깬 아이처럼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다시 밀물이 든다, 안으로
    썩어버린 어제의 썰물을 져다 버리고
    쪽빛 투명한 피부로 돌아오는 밀물
    그러나 하룻밤 사이
    제 모습을 잃어버린 썰물이 되어 다시 떠나간다
    언제부터인지 종이처럼 자꾸만 물에 젖어가는 항구
    사람들은 저마다 어디론가 말없이 떠나가고
    헤일 수 없이 젖어 온 나날의 생채길 거머쥐고
    맨발로 바다 한복판을 건너려다 익사한 아이들
    누군가 돌아오라 뱃고동처럼 소리쳐 불러도
    항구엔 낯선 바람소리뿐
    바다 위엔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고
    죽어버린 말들처럼 눈이 내린다
    날마다 떨어진 삶의 그물을 꿰매고 일어서는
    못 떠나는 사람들의 지친 그림자들만
    황혼에 젖어 바다로 기일게 드러눕고 있다 

     2.
    이른 새벽이면 언제나 여명으로 눌러내리는 시장기
    움푹 패인 고기눈마냥 겨울이 깊은 항구에
    다시 허리 구부러진 삶을 풀어놓는 사람들
    우리에게 낯익은 어둠이
    하루아침 걷어치울 덫이 아님을 알았을 때
    우리는 안으로 견고한 기다림의 닻을 내려야 한다
    출항한 작은 배들이 만선의 꿈을 가득 싣고 돌아올 때
    잠자던 항구가 멀리까지 팔을 벌리며
    진정 바다 같은 사랑으로 맞이할 아침은 오리니
    아직도 어둠이 깔려 있는 항구에 나직이
    나직이 눈이 뜨이는 아침
    그 여명으로 시장기를 채우며 우리는
    이제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림 : 홍경표 화백)

    '시(詩) > 김선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선태 - 탐진나루에 가서  (0) 2014.05.14
    김선태 - 떠도는 곳마다 길이 있었다  (0) 2014.05.14
    김선태 - 흑산도  (0) 2014.05.14
    김선태 - 물북  (0) 2014.01.20
    김선태 - 백련사 오솔길에 들다  (0) 2014.01.1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