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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짐승처럼 절뚝거리며 스며들고 싶었다
더는 갈 수 없는 작부들의 종착역
슬픔은 더 깊은 슬픔으로 달래라 했던가
늙은 작부 무릎에 슬픔을 눕히고그네의 서러운 인생유전을 따라가고 싶었다
삭을 대로 삭은 홍어 살점을 질겅질겅 씹으며쓰디쓴 술잔을 들이켜고 싶었다
그렇게 파란만장의 시간을 가라앉혀제대로 된 슬픔에 맛이 들고 싶었다
때론 누추한 패잔병처럼 자진 유배를 떠나고 싶었다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천형의 유배지
절망은 더 지극한 절망으로 맞서라 했던가
후미진 바닷가에 갯고둥 하나로 엎어져흑흑 파도처럼 기슭을 치며 울고 싶었다
다시는 비루한 싸움터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그대로 애간장 까맣게 타버린 한 점 섬이 되고 싶었다
(그림 : 정연갑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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