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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 탐진나루에 가서시(詩)/김선태 2014. 5. 14. 16:42
고무줄 같은 그리움의 긴 끈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봄날
느닷없이 등뒤에서 어깨를 치는 추억에 이끌리며
나는 내 고향 탐진나루에 갔다
삐비꽃, 장다리꽃 마구 흐드러진 강둑을 걸어가노라면
추억은 들킨 듯 새떼처럼 일시에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찍힌 발자욱들이 살아서 내 발목을 잡을 때
추억은 이 강둑의 끝까지 아프고 환하다
이 냇가 물 건너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가신 어머니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누나와 나는 둑에 쪼그리고 앉아 강물을 보며 울었다
장마가 지면 강물은 둑을 넘어와 논밭을 삼키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을 앞까지 쳐들어와서는
집집승들을 데리고 넓은 바다로 영영 가버렸었지
지금은 속이 안보일 만큼 물빛이 어두워졌지만
그땐 은어떼들이 조무래기들이랑 말갛게 헤엄치며 놀았어
저녁 무렵, 탐진나루 서편하늘에 붉게 노을이 걸리고
모기떼처럼 뒤쫓아오는 추억을 나는 겨우 떼어놓고 돌아왔지만
잠자리에 들자 그것들은 어느 새 곁에 와 누워 있었다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추억은 노을처럼 진하고 따스하다(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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