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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국 - 삼포리에 가서
    시(詩)/이상국 2014. 4. 10. 14:04



    1                               
    집이여
    아침저녁 연기 올리던 삶이 빠져나가니
    이백년 삼백년 묵은 구들장도 잠깐 식는구나
    사개 뒤틀린 마구채 기둥뿌리 버둥거리고
    마당가 말풀에는 뜸부기가 집을 짓겠다
    누가 알겠니
    저 왕조의 엄청난 무게도 버텨왔던 대들보가
    왜 우리들의 세상에 와 무너지는지를

    컴컴한 용마루 꼭대기의 성주도
    곡기를 끊은 지 오래 되었다
    며느리들 청이 돌게 닦던 마루와
    아이들 이빨 뽑아주던 문고리들도
    이제는 쉬는구나
    오래 쉬거라
    고방 동이 속에 잠든 밀가루와
    서까래 끝에 매달린 시래기 타래들
    그리고 어씨 문중 학생부군들아

    집이여
    한때는 고래등 같았던 마음속의 집이여
    전답의 피가 다 빠져나가고도
    삼포리 감은 붉게 익었는데
    기왓장은 날마다 마당바닥에 그 몸을 던진다
    아 이렇듯 오래 된 집은 임종은 길고 모질구나

     

    2

    잎 진 삼포리 늦여물 때
    빈집 한채 떠오른다
    주춧돌과 뜰팡과
    땅의 것은 땅에다 돌려주고
    서로 부딪쳐 몸 깨며 우는 장독을 버리고
    기우뚱거리며 떠오른다

    눈이 올래나
    춥게 엎드린 뒷산 솔숲 너머로
    하늘이 낮게 내려앉는데
    아직 마당에 소를 맸거나
    경운기 때문에 몸이 무거운 집들은
    이마에 손을 얹고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가랑잎처럼
    민들레 씨앗처럼
    비로소 집은 떠오르는구나
    담벼락에 기댄 해묵은 장작가리와
    소주병 더미 위로 떨어지는 햇살 사이로
    아주 오래 된 기와집 한채가
    봉창유리 반짝이며 떠오른다

    네 굽을 허우적거리는 소를 앞세우고
    멍석닢과 기둥들이 떠간다
    그 뒤로 조선의 이끼 낀 기왓장들이
    기러기떼처럼 끼룩거리며
    송지호 쪽으로 날아간다

    (그림 : 김종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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