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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 시래깃국을 끓이며시(詩)/이향아 2014. 3. 18. 18:30
시래기 가닥에는 지난여름 비늘이 얼룩져있다
누군가 벗어던진, 그래도 이만하면 누더기는 아닌,
가으내 볕에 말려 버스럭거려도
절대로 부서질 껍데기는 아닌
그렇다고 실한 알맹이도 아닌
살은 시들시들 말라버리고 실핏줄만 고집스런
시래깃국을 끓인다
무심한 계절이 한바탕 몸살을 들쑤시고 떠난 들판
온갖 바람 두 눈 뜨고 지켜봤을지라도
끝끝내 그 말은 씨알처럼 파묻으리
밤새도록 의좋은 형제들처럼
나락 짐을 나르는 꿈에 시달리다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질정 못할 아침이면
으스스 몰려드는 한기 같은 외로움을
된장 풀고 숭덩숭덩 풋고추를 썰어서
애나 어른이나 한 대접씩 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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