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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 - 남해 마늘밭시(詩)/배한봉 2014. 2. 20. 15:37
하오의 바닷바람에 온몸을 출렁이는 마늘밭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종을 뽑는
할머니 일생을 솨르륵 솨르륵 읽고 있다밀물과 썰물 소리를 내던 검푸른 시간
그 추억의 손목을 잡아당기면
해수병 앓는 영감이나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
성큼성큼 졸랑졸랑 걸어오던 시절도 보이리라종을 뽑아야 마늘 뿌리 더 굵어지듯
꽃시절의 골수 뽑아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던 우리들의 어머니, 어머니여름날 긴 해도 짧던 그 마늘밭이
오늘은 바다가 된다, 주름지고 못 박힌 손
허옇게 센 머리칼을 적시며 출렁이는 바다
그 바다에 뜬 섬 하나
영영 펴지지 않을 것 같은 굽은 등 위로
솨솨솨 바람 불어 남루해진 세월을 지운다끼룩끼룩 몇 마리 갈매기도 불러와
수만 권 생애의 책을 펼쳐 읽는
검초록 광휘의 남해 마늘밭(그림 : 김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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