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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두현 - 늦게 온 소포
    시(詩)/고두현 2014. 2. 3. 20:59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그림 : 심유림 화백)

     

                                                                                                                                           

    (낭송 : 김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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