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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경덕 - 봄날
    시(詩)/마경덕 2014. 1. 12. 11:20

     

     

    하동 고하리 장날, 줄줄이 이고 지고 버스에 오릅니다. 때는 봄, 온 천지가 후끈 달아올라 노인의 마른 몸에도 물이 고일 것 같은 날, 장 보고 가는 고무다라 보따리 포대자루 초만원입니다.

     

     매부리코 노총각 윗말 어린 처녀 등에 찰싹 붙어 코를 씰룩, 눈을 내리 뜬 처녀 귓불이 붉네요. 훌쩍 마흔 넘긴 무지렁이 총각 절구통에 치마만 둘러놔도 거시길 디밀 겁니다. 환장할 봄이거든요.

     

    재첩장사 과부 아지매, 떨이를 못했는지 어깨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최씨네 구멍가게 돌아 커브 길에 닿자 걸쭉한 아낙의 목소리, “에구구! 젓통 터진다.” 소갈머리 없는 밴댕이 남편에게 먹여보라는 젓갈장사에게 홀려 콤콤한 젓갈 한 봉지 산 게 그만 터지고 말았습니다. “젖통이요, 젓통이요?” 능글맞은 남정네의 물음에 왈칵 웃음이 쏟아집니다. 산수유가 노랗게 실눈 뜨는 봄, 발을 밟혀도, 허허허, 호호호. 봄은 넉살좋게 굴러갑니다.  삼거리 욕쟁이 할매 보따리 챙겨들고 일어서는데. 버스문 까지는 첩첩산중, 입심은 여전해 오살헐 놈, 육실헐 놈 출구에 닿기 전 이미 몇 놈은 죽어 넘어졌지요. 성미 급한 어르신 얼른 비키라고 호통이신데. 쉽게 길이 나지 않습니다. 밀고 당기며 간신히 내렸는데 아뿔사! 아랫도리 허전합니다.

     

    노상에서 고쟁이 하나 달랑 걸친 할매, “이놈들아, 치마 내놔라” 일갈에 끈달이 홑치마를 찾느라 또 한번 버스가 우당탕, 옆구리를 비틉니다. 누군가 비린내 묻은 치마를 휙 창 밖으로 던지고 웃음 한 사발 엎질러집니다. 봄은 또 그렇게 스리슬쩍 가파른 고개를 넘어갑니다. 

    (그림 : 고재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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