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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우 - 참깨 차비
    시(詩)/박성우 2014. 1. 6. 13:40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와 문 앞에 어정쩡 앉으신다

    처음 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뵌 것 같기도 한,

    족히 여든은 넘어 뵈는 얼굴이다

    아침잠이 덜 깬 나는, 누구시지? 내가 무얼 잘못했나?

    영문도 모른 채 뒷머리만 긁적긁적, 안으로 드시라 했다  

     

    할머니는 불쑥 발을 꺼내 보여주신다

    흉터 들어앉은 복사뼈를 만지신다

    그제야 생각난다, 언제였을까

    할머니를 인근 면소재지 병원에 태워다드린 일.

    시간버스 놓친 할머니만 동그마니 앉아 있던 정류장,

    펄펄 끓는 물솥을 엎질러 된통 데었다던 푸념,

    탁구공 같은 물집이 방울방울 잡혀 있던 작은 발, 생각난다  

     

    근처 칠보파출소에 들어가 할머니 진료가 끝나면

    꼭 좀 모셔다드리라 했던 부탁,

    할머니는 한 됫박이나 될 성싶은

    참깨 한 봉지를 내 앞으로 민다 

     

    까마득 잊은 참깨 차비를 낸다

    얼결에 한 됫박 참깨 차비를 받는다

    지팡이 앞세우고 물어물어,

    우리집을 알아내는 데 족히 일년이 넘게 걸렸단다 

     

    대체 우리는 몇 가마니나 되는 참깨를 들쳐메고

    누군가의 집을 찾아나서야 하나?

    받은 참깨 한 봉지 들고 파출소로 간다

    (그림 : 김동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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