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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 국수
    시(詩)/백석 2014. 1. 3. 22:35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대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굳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김치가재미 → 겨울철 김치를 묻은 다음 얼지 않도록 그 위에 수수깡과 볏짚단으로 나무를 받쳐

    튼튼하게 보호해 놓은 움막.

    넓은 뜻으로는 김칫독 묻어두는 곳(김치 창고).

    멕이고 → 활발히 움직이고 

    양지귀 → 양지바른 가장자리

    은댕이 → 언저리

    예대가리밭 →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산멍에 → 전설상의 커다란 뱀. '이무기'의 평안도 방언

    분틀 → 국수 뽑아내는 틀

    들쿠레한 : 좀 달고 구수하고 시원한

    큰마니 → 할머니의 평안도 방언

    집등색이 → 짚등석. 짚이나 칡덩쿨로 짜서 만든 자리

    자채기 → 재채기

    댕추가루 → 고추가루

    사리워 → 담겨져서

    탄수 → 식초

    삿방 →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를 깐 방

    아르굳 → 아랫목

    고담하고 → 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는(화려하지 않으나 고급스러운)

    (그림 : 림용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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