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백석 - 여우난골족(族)
    시(詩)/백석 2013. 12. 28. 10:14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 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이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여우난 곬족 : 여우가 난 골짜기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

    진할머니 : 아버지의 외할머니

    별자국 : 천연두 흉터 자국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 자기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눌한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 우직하니 일만 하는 성격

    족족하니 : 빛깔이 고르지 않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화가 나서 토라지는 모양을 흉내낸 말)

    매감탕 : 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후 솥을 씻은 진한 갈색의 물

    코끝이 빨간 : 남몰래 많이 우는

    토방돌 : 집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오리치 : 오리를 사냥하는 평북 지방 특유의 사냥 용구

    반디젓 : 밴댕이젓

    송구떡 : 소나무 어린 가지의 속껍질을 넣어 만든 떡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 서느런 느낌이 드는 북쪽 지역임을 드러냄.

    저녁술 : 저녁밥 먹는 숟가락

    숨굴막질 : 숨바꼭질

    아르간 : 아랫간, 아랫방

    조아질, 쌈방이, 바리깨돌림, 호박떼기, 제비손이구손이 : 아이들 놀이의 여러 종류

    조아질 : 공기 놀이

    쌈방이 : 가까 싸움 놀이

    바리깨돌림 : 밥그릇 뚜껑 돌리기

    제비손이구손이 : 서로 다리를 끼고 노래 부르며 다리를 세는 놀이

    화디 : 등잔을 얹는 기구

    사기방등 : 방에서 켜는 사기 등장

    홍게닭 : 새벽닭

    텅납새 : 처마의 안쪽 지붕

    무이징게국 : 무와 민물새우를 넣어서 끓인 국

    (그림 : 박선희 화백) 

    '시(詩) > 백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 수라(修羅)  (0) 2014.01.08
    백석 -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0) 2014.01.08
    백석 - 바다  (0) 2014.01.08
    백석 - 탕약(湯藥)  (0) 2014.01.08
    백석 - 국수  (0) 2014.01.0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