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백석 -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시(詩)/백석 2014. 1. 8. 17:46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로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언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던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 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례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뺄뺄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꼬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모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객고(客苦)-객지에서 당하는 고생

    *억병-매우 많이

    *가업집-길거리에서 하는 영업집

    *반관-작은 중국 식당

    *원소(元宵)-중국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먹는 새알 모양의 전통 음식

    *오독독-중국 폭죽의 일종. 화약을 재어 점화하면 터지는 소리를 자꾸 내면서 불꽃과 함께 떨어지게 만든 것

    *아모려나-'아모'는 '아무(某)'의 옛말. 아무렇게나 하려거든 하라고 허락하는 말

    *옛투-예투(例套). 즉 상례가 된 버릇

    '시(詩) > 백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 흰 바람벽이 있어  (0) 2014.01.08
    백석 - 수라(修羅)  (0) 2014.01.08
    백석 - 바다  (0) 2014.01.08
    백석 - 탕약(湯藥)  (0) 2014.01.08
    백석 - 국수  (0) 2014.01.0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