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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영 - 물잠자리시(詩)/나종영 2013. 12. 25. 12:12
망초꽃 흐드러지게 핀
물숲 가장자리에 물잠자리떼 날고 있다
너울너울 검은 날개를 저으며
물가에 앉았다 바람에 흔들렸다가
가던 길을 가지 않고
저문 물소리 흐느끼는
망초꽃밭을 맴돌고 있다
어디를 에돌다가 늦여름 혀를 빼문
망초꽃 잔돌가에 떼무덤을 만들려는가 보다
어디서 본 듯한 동자승 하나
제 키를 덮는 풀숲 너머로 사라지고
어어 서른 몇 해 전이었던가
네 꽁무니에 지푸라기를 꽂고
진홍빛 성냥불을 사납게 그어대었던 것이
어이 미안하다
내 뺨에 화인(火印)처럼 박혀 있는
검은 날개의 세월이여
그 때 정신없이 염천 하늘로
치솟아 곤두박질쳤던 물잠자리
달빛 으스러지는 망초꽃밭
산그늘 물빛 그윽한 이 곳이
오늘 비로소 물잠자리로 환생한 내 무덤인가 보다(그림 : 이석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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