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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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선 - 산책시(詩)/이성선 2014. 1. 15. 01:02
안개 속을 들꽃이 산책하고 있다 산과 들꽃이 산책하는 길을 나도 함께 간다 안개 속 길은 하늘의 길이다 하얀 무명천으로 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안에 나도 들어가 걸어간다 그 속으로 산이 가고 꽃이 가고 나무가 가고 다람쥐가 가고 한 마리 나비가 하늘 안과 밖을 날아다니는 길 발 아래는 산, 붓꽃 봉우리들 안개 위로 올라와서 글씨 쓴다 북과 피리의 이 가슴길에 골짜기 고요가 내 발을 받들어 허공에 놓는다 써 놓은 글씨처럼 엎질러진 붉은 잉크처럼 아침 구름이 널려 있다 이붓꽃에서 저 붓꽃으로 발을 옮길 때 안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세상이 내 눈 안에 음악으로 산다 안개 속을 풀꽃 산 더불어 산책을 한다 (그림 : 이육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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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선 -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가시(詩)/이성선 2014. 1. 15. 01:02
바라보면 지상에는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늘 하늘빛에 젖어서 허공에 팔을 들고 촛불인 듯 지상을 밝혀준다 땅속 깊이 발을 묻고 하늘 구석을 쓸고 있다 머리엔 바람을 이고 별을 이고 악기가 되어 온다 내가 저 나무를 바라보듯 나무도 나를 바라보고 아름다워 할까 나이 먹을수록 가슴에 깊은 영혼의 강물이 빛나 머리 숙여 질까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무처럼 외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혼자 있어도 놀이 찾아와 빛내주고 새들이 품속을 드나들며 집을 짓고 영원의 길을 놓는다 바람이 와서 별이 와서 함께 밤을 지샌다 (그림 : 한희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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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선 - 봉정암 가는 길시(詩)/이성선 2014. 1. 15. 01:01
길 따라 굽어 흐르는 물 백 개의 연못에 백 번 얼굴을 비추고 백 번 마음을 고쳐야 열리는 山門. 귓가에 넘치는 물소리가 모두 법문이고 가지의 바람소리가 오도송이며 우거진 쑥대풀과 억새꽃이 다 詩다 골짜기로 밤에 쏟아지는 별들이 물 속에 빠져 꽃잎처럼 떠 있는 곳 으로 발을 옮기는 이가 영원히 거기서 길을 잃고 나오기 싫어한다 단풍 사이로 난 좁다란 길에 노랗고 빨간 잎사귀가 떨어지고 그 곁 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 깨끗하다. 고라니 발자국 같아서 먼저 간 사슴 발자국 같아서 일찍 깬 새벽 공기가 입을 대고 냄새 맡고 바람이 와서 손으로 만져 본다. 사람 자취가 여기서 처음 신성하다 산 전체가 구름 옷을 벗고 있다.산이 깨어나는 소리 듣는다. 나무 사이로 아침 안개가 햇살에 쫓겨 바삐 달아나며 빗물 머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