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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 - 역전 다방시(詩)/시(詩) 2023. 8. 13. 20:40
오래된 그리움 한 모금 동전과 교환하자
내 심장에서 군용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출발했다
아, 생각나, 그 풍년 빵집 옆 역전 다방
모나리자 얼굴마담은 농약 마시고 죽은
사촌누이를 참 닮았었지
온종일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처럼
양철 챙에 떨어지는 빗소리
그리고 찻잔 씻는 물소리가
넝쿨처럼 푸른 물탱크까지 기어 올라갔지
그 숲속 둥지 같은 2층에서 내려다보면
나는 이방인 거리에 버려진 트렁크 같았지
먼바다 수평선이 짙은 아이라인을 그리는 오후 무렵이면
다투어 손님 찾는 다이얼식 전화벨 소리
마른 냇갈의 물고기처럼 파닥거렸지
밑 빠진 독같이 모두 떠나고
역전 다방 불빛만 남아 쓸쓸할 때
푸시시 형광등 나간 수족관 속으로 들어가서
새우잠 청하던 얼굴마담은 우리 누이가
죽었을 때처럼 그렇게 조용했지
정말 나는 착한 외눈박이 물고기 눈으로
모나리자 누이, 참 많이 울렸지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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