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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를 타고 올라가던 능소화가
눈동자를 뚫고 나왔다 마른 가지를 내밀었다
돌의 박물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진안 마이산에서 본 돌덩이를 파고 들어간 바로 그 능소화
모든 것이 조용히 지나가주지 않는 날들이다
칠월에 꽃 피는 거 보러 가겠다고 엉덩이를 털며 돌아와
깜빡 잊고 살았다 한 해가 지나버렸다
칠월에 능소화가 피었다가 졌겠지 아마, 그날 두고 온
으깨진 시간들이 내 몸에 남아 있었나 보네
잠을 잤다 옆구리를 타고 올라가던 능소화가
방향을 바꾸는 게 느껴졌다
눈알이 빨개졌다 독을 먹은 꽃이었고 울음이었다
습(濕)의 시절이 다시 돌아온 걸까
마디마디 메마르지 않고 잎들도 꽃들도 무성하라고
눈물이 흐른다 흘러준다
내가 비를 좋아한다는 걸 당신이 잊지 않기를
(그림 : 김희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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