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주민현 - 블루스의 리듬
    시(詩)/시(詩) 2023. 6. 11. 15:32

     

    높이 던진 공이 잠시 멈추었다

    빠르게 낙하하는 리듬으로

    우리는 블루스의 리듬을 그런 식으로 배웠지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

    붕, 떠오르는 감각보다는

    잠시 멈춘 뒷모습만이 기억나는

     

    블루스의 춤곡, 춤곡의 리듬

    음악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

    하지만 그러지 않기 위하여 밤을 새던

    우리의 기쁘던 나날을 기억하는지

     

    "너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줘"

    함정에 빠지기 일쑤였으므로

    음악은 불길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돌아와

    어젯밤의 노래를 다시 만지는,

    그러나 대부분은 실패를 거듭하는 생활

     

    너는 어둠 속에 앉아 스노볼을 흔드네

    슬픔도, 회한도 아닌 그 무엇이 섞여 내리네

    저녁도, 새벽도 아닌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블루스의 리듬 같은 건 잊어버리네

    물속인 걸 모르는 물고기처럼

     

    매일 저녁 블루스 카페에 모이는 우리는

    더 이상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기 위해서라네

    블루스의 리듬엔 무엇이든 감출 수 있어

     

    데뷔를 못한 가수도, 데뷔했으나

    그저 그런 노래만 쓰는 가수도

    여기선 모두 적당한 리듬에 젖는 손님들일 뿐

     

    높이 던진 공이 공중에 멈추었다

    떨어지는 리듬으로,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것은 때때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네

     

    엇박자, 실패한 리듬으로 뒤돌아보며

    헤어지는 연인이나

    몰래 개를 두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네

     

    종이에 썼던 편지도, 가사도

    이사할 땐 처치 곤란의 추억들일 뿐

    그러나 스노볼 속에선

    한낱 조각난 종이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지

     

    흔들리며 명확해지는 풍경이 있어

    흔들리는 마음의 풍경을 너는 쓴다네

     

    파랗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어쨌거나 블루스의 리듬으로

    (그림 : 이은채 작가)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창수 - 능소화  (0) 2023.06.19
    최문자 - 재료들  (0) 2023.06.17
    김근열 - 담쟁이  (0) 2023.06.07
    김임순 - 접시꽃 피더라  (0) 2023.06.07
    여태천 - 햇빛 한 줌  (0) 2023.06.0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