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태천 - 햇빛 한 줌시(詩)/시(詩) 2023. 6. 7. 09:01
시간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멀리서 온 너의 편지에는 함께한 이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구나.
녹아내린 글자들
오랜 시간을 건너오느라 힘들었구나.
힘들게 적어 내려간 마음 하나하나를
차마 보지 않을 수 없구나.
그런데 어쩐 일일까?
편지를 읽을수록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은
헤어날 수 없는 구렁은
이렇게나 외롭구나.
유월의 햇볕은 게나예나 뜨겁다.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가지를 뻗고
나는 더 자라고 싶지 않다.
자랄 수가 없다.
잎 사이로 흔들리는 햇빛을 보고 있자니
열일곱 내가 보이고 서른을 넘어서도 불안했던 시절이 있다.
익숙한 눈빛이 그래서 좋구나.
저녁의 감정은 이래서 기쁘기도 하구나.
그런데 깊은 밤 잿더미 속에 불씨를 감추어야 하는
나이는 부끄럽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더라.
참혹한 일을
언제나 그렇듯이
참담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알아채고
일그러진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구나.
게나예나 : 거기나 여기나 준말
(그림 : 이기우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근열 - 담쟁이 (0) 2023.06.07 김임순 - 접시꽃 피더라 (0) 2023.06.07 장승진 - 꽃마리 (0) 2023.06.01 김명숙 - 꽃들의 향방 (0) 2023.05.26 이이향 - 장미는 제 이름을 오월 속에 숨겨 두고 (0) 2023.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