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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 강은 전생을 기억할까시(詩)/이홍섭 2023. 6. 1. 13:39
어디 마음 둘 데 없을 때
쪼그려 앉아
흘러가는 강물이나 바라보는 것은
강이 자신의 전생을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거야
마음 둘 데 없다는 것은
지금 내가 현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두 발로 서 가는 사람에게나
외발로도 서 있는 나무 밑에 가 울고 있겠지
쪼그려 앉아
얼굴에 물때가 끼일 때까지 앉아 있는 것은
강의 전생에 위로 받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무심하게 흘러가는 저 강물에 위로받을 수 있을까
큰 홍수가 나면 알지
강물은 자신이 기억하는 길을 따라 달려가고
길을 막으면 그 자리에서
한 생을 걸고 범람한다는 것을, 강이 휘어 흐르는 것은
다 전생이 아프기 때문일 거야
어디 마음 둘 데 없더라도
해질 무렵에는 강가에 나가지마, 강의 전생이
아니 너의 전생이
붉은 노을 속에 눈 뜨는 것을
차마 보지는 마
(그림 : 임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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