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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창문으로 넝쿨을 뻗어 올라온
하얀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당신이 심어놓은 것이지요.
하얀 찔레꽃이 좋다며
어렵게 어렵게 구해서 심어놓은
그 꽃이 피었네요.
작년에도 피었을 테고
재작년에도 피었을 텐데
그런데 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꽃들도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당신이 떠난 후
꽃이 피어도 내겐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당신 떠난 지 3년,
벌써 이렇게 안정이 되어가는 건가요?
그래서 갑자기 꽃이 보이기 시작한 올봄엔오히려
당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내 마음에 정좌한 당신을 보듯
흰 꽃잎 속 한가운데 들어앉은
노란 꽃술을 잠시 들여다봅니다.
(그림 : 한희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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