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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빈 - 길 위에서시(詩)/시(詩) 2022. 8. 23. 10:36
누군들 길을 물어 가겠는가
누가 길을 불러 세우겠는가
수없이 꺾어진 길들이여
나보다 먼저 떠난 길들이여
여기 황망히 서서 흩어지는 구름을 본다
흔적도 없이 바람은 또 그렇게 불어서
나의 등을 때리며 지나간다
어디 마음 둘 곳 있으랴
어디 누울 자리 하나 있으랴
칼날 같은 길이여
밟으면 언젠가 꾸었던 꿈들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다시 적셔지는 길들이여
끊어진 길을 또 다른 길이 이어가고
이어가도 보이지 않는 길
저기 새 떼들 능선을 건너가며 건너오는 길
고개고개 접어들면서
흘러가는 길이여
동트는 수평선 너머까지 나를 부르는 길이여
누군가를 위하여 수없이 마중 나가는 길이여
기어코 다시 돌아오는 길이여
누군가 먼길을 돌아오는지 날이 저문다
돌아와서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고 저녁을 짓는지
섬까지 노을에 잠긴다
거기에도
붉은 심장을 가진 사람의 길이 닿는다
(그림 : 이영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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