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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숲 - 달팽이의 높이시(詩)/시(詩) 2022. 8. 1. 21:38
바닥에 사는 일은 터무니없이 넓은 지상을 지켜내는 방식이야
느린 것은 한 생애를 반추하기 좋은 춤의 동작이지
품새를 익히지 않아도 골똘해지면
생각은 마른침으로 쓸고 가는 한나절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다
먼지 떨어진 바닥을 닦으면서 등을 지킬 때
한 생애는 장엄한 것
쉽사리 놓을 수 없는 것
활짝 펴지기 전까지 그것은 다만 등짐일 뿐
무거움으로부터 그녀는 저편을 꿈꾼다
몸을 뒤집으면 종이비행기가 될 거라고 확신하는 오늘도
짠맛이 풍기는 쪽으로 몰래 웃음을 부려 놓고
삶을 뒷발로 차듯 스쳐가는 바람아
투명한 점액질로 날갯짓하지 않아도 바람의 길을 따라 하구에 닿을 수 있는 세계를,
공중에 떠서 가고픈 한 시절을 꾹꾹 짊어지고 가는구나
캄캄한 피부를 보여줄 수 없어 동그랗게 움츠려드는 오후
햇살이 집중 포격을 가해도
너는 펴짐줄을 제때 당기는 연습을 해야한다
어차피 유목민은 높이로 가는 꿈에 상처입지 않으므로
맨몸으로 밀고 나간다
바닥중의 바닥은 봉투보다 얇을까
햇빛을 실로 짜서 부채를 펼치듯 활짝 펼치고
마른 곡선의 댄스를 추리라고
오늘도,
뼈로만든 낙하산 하나 등에 업고 출근한다
(그림 : 방정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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