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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 이별의 서시(詩)/시(詩) 2022. 5. 28. 13:27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
서로를 가득 채운다거나
아니면 먼지가 되어버린다거나 할 수도 없었지
사실 이 두 가지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
한 시절 자주 웃었고
가끔 강변에 앉아 있었다는 것뿐
그사이 파산과 횡재와
저주와 찬사 같은 게 왔다 갔고
만국기처럼 별의별 일들이 펄럭였지만
우리는 그저 자주 웃었고
아주 가끔 절규했지
첼로가 있었고
노란 루드베키아가 있었고
발가락이 뭉개진 비둘기들이 있었고
가끔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바람이 많았지
반은 사랑이고 반은 두려움이었지
내일을 몰랐으니까
곧 부서질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가져도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단어도 모두 부정확했으니까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바람, 너무 많은 빗물
이런 게 다 우리를 힘들게 했지
우리의 한숨이 너무 깊어서
우리는 할 일을 다한 거 같았고
강변에서 일어나기로 했지
기뻐서 햇던 말들이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
(그림 : 조은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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