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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만 - 강화 북쪽시(詩)/박일만 2022. 5. 18. 20:56
동해에서 내처 달려온 철책이
간격을 더 벌려 마주 선다
물길을 한껏 끌어안은 탓이다
강이 빗장을 풀어 바다를 껴안고
물과 물이 몸을 섞고 피를 나눈다
건너편 깃발은 시대를 아는 듯 각을 접었고
대신 빨래가 병영을 지키며 나풀거린다
나무들끼리 가끔은 초병을 흉내 내며
강 건너에 대고 거수경례를 한다
양 갈래로 둘려진 철책너머로
어부들은 출항했다가 해가 지기 전 돌아온다
늦으면 이데올로기의 낙오자가 될 것이다
바람 부는 날에는 돌아갈 곳을 잃은 두루미들이
외발로 초병 대신 경계근무를 서면
눈길을 피해 물고기들은 더욱 깊이 가라앉는다
한방에 먹이를 물어야한다는 수칙은
이미 오래된 전략,
그 많은 세월동안 바라보다 이념은 빛이 바래고
강은 늘 출렁이며, 출렁거리며
제 속에 앞뒤 산천의 그림자를
죄다 끌어 모아 덮고 산다
(그림 : 손장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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