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박일만 - 회덕분기점
    시(詩)/박일만 2019. 12. 2. 18:01

     

    강낭콩 줄기 따라 남으로 간다
    꽃을 보고자 뻗어가는 길마다 살이 오르고
    햇살같이 밝은 핏줄이 펼쳐진다
    내밀한 역사를 포장한 도로에 솜털이 돋아
    이슬과 비바람을 떨쳐내며 굵게 자란다
    가던 길이 막 끝나자마자
    길이 다시 시작되어 푸른 가지로 뻗는,
    좌로 가면 우듬지
    우로 가면 잎사귀 너머이므로
    한 몸이 두 갈래로 영영 이별이겠으나
    되돌아 갈 수도
    머뭇댈 수도 없는 즈음에 나는 더욱 명료해진다
    살다 보면
    좌인지 우인지 방향지시등을 깜빡 잊을 때도 있지 않은가
    속도에 갇혀 미처 손짓도 없이 사라지는 얼굴들
    옆모습이 마냥 쓸쓸하다
    나의 생이 갈 길을 몰랐을 때에도 길은 거기 있었으나
    내가 가는 길이 옛길인지 신작로인지 분간 못할 때
    느닷없이 갈라졌던 두 몸의 덩굴 끝에서
    한 몸의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길 끝에서 길이 자란다

    (그림 : 김정기 화백)

    '시(詩) > 박일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일만 - 강화 북쪽  (0) 2022.05.18
    박일만 - 봄, 들키다  (0) 2021.03.19
    박일만 - 가로등  (0) 2019.08.15
    박일만 - 주소지  (0) 2019.08.15
    박일만 - 빚진 봄  (0) 2019.08.1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