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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만 - 회덕분기점시(詩)/박일만 2019. 12. 2. 18:01
강낭콩 줄기 따라 남으로 간다
꽃을 보고자 뻗어가는 길마다 살이 오르고
햇살같이 밝은 핏줄이 펼쳐진다
내밀한 역사를 포장한 도로에 솜털이 돋아
이슬과 비바람을 떨쳐내며 굵게 자란다
가던 길이 막 끝나자마자
길이 다시 시작되어 푸른 가지로 뻗는,
좌로 가면 우듬지
우로 가면 잎사귀 너머이므로
한 몸이 두 갈래로 영영 이별이겠으나
되돌아 갈 수도
머뭇댈 수도 없는 즈음에 나는 더욱 명료해진다
살다 보면
좌인지 우인지 방향지시등을 깜빡 잊을 때도 있지 않은가
속도에 갇혀 미처 손짓도 없이 사라지는 얼굴들
옆모습이 마냥 쓸쓸하다
나의 생이 갈 길을 몰랐을 때에도 길은 거기 있었으나
내가 가는 길이 옛길인지 신작로인지 분간 못할 때
느닷없이 갈라졌던 두 몸의 덩굴 끝에서
한 몸의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길 끝에서 길이 자란다(그림 : 김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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