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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섭 - 멧돌의 궤적시(詩)/시(詩) 2022. 3. 30. 15:03
어둠이 덧칠되는 저녁마다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남녀 댄서가 부둥켜안
고 탱고 춤을 추는 줄 알았으나 그는 누대로부터 이어온 단단한 극빈을 타
파하려고 입가에 흰 거품을 물며 도는 나의 파수꾼이었다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얼굴 표정으로 개화한 지상의 꽃을 부정하며
하루 종일 공터를 배회하는 궁둥잇바람인 줄 알았으나 땀으로 생의 간을
맞추며 무릎이 해진 나의 영혼을 수선하는 늙은 미싱사였다
그가 허무를 신으로 숭배하며 공회전하는 물레방아인 줄 알았으나 제
몸을 갈아 인기척이 없는 굴뚝에 저녁연기를 피워 올리며, 어린 꽃들의 서
늘한 하루를 봄날 같은 아랫목에 묻어 데우는 어머니였다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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