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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 술 마시는 행위시(詩)/류근 2022. 3. 17. 22:10
술김에 사표를 던지고
두어 달 술로 시간을 헹구다 보니까
술 마시는 행위가 점점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술 마시는 행위가 부끄러워져서
결국 혼자 숨어 술 마시게 되면 백발백중
알콜 중독이다 당신은 과거 6개월간
술 마시고 2회 이상 필름이 끊긴 적이 있습니까?
혼자 있을 때 술 생각이 납니까? 술로 인해
인간관계 또는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술을 마시게 됩니까?
술에서 깨고 나면 죄책감에 시달립니까?
등등
여성지에 실린 문항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보면
현재 나의 상태는 의사와의 면담 단계를 지나
긴급 격리수용 대상자에 해당된다 가상하다
여성지 빈칸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숙취의 사내여
그 친절한 처방을 알기 전부터
술를 빌려 스스로 세상과의 격리를 실천해왔으니
오늘은 부끄럽지 않게 술 마실 일이로다
(그림 : 이영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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